위즈아이 코리아

웹과 사진 -두마리를 쫓다-
나의 첫 쇼핑몰 취업기


근무기간 - 1년 8개월 (2010.04 ~ 2011.11)
담당업무 - 사진촬영,사이트제작,디자인,마켓관리
해당직급 - 대리
소재지 -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위즈아이 코리아는 홍시디자인학원을 수료 후 압구정에 위치한 웹에이전시로 잠깐 다니면서 에이전시의 대한 실망감을 뒤로하고 웹디자이너란 타이틀로 본격 일을 하게된 웹 첫직장이였다.

 

오픈마켓을 통해 남성의류를 취급하는 업체였으며
카테고리별 상위권에 드는 셀러였다.

처음 입사하고선 상세페이지 및 마켓별 옵션엑셀 업로드같은 기본적인 업무 위주로 작업하며 오픈마켓에 대해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갔고, 마켓별로 조금씩 다른 제한들이 파악이 되었을때 처음으로 하나의 카테고리를 제품촬영부터 페이지 디자인까지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여름용 비치팬츠 & 나시였다. 통상 바닥컷으로 촬영하는 제품이였는데 바닥컷이 보통 어려운게 아니더라. 적당히 바닥에 놓고 찍으면 지저분하고 어설퍼서 최상의 주름(?) 이 잡힐때까지 덥고,좁은 공간에서 삐질삐질 땀흘려가며 심혈을 기울여 촬영했었다.

 

잘 잡은 주름,모델컷 안 부럽다.

좋은 주름을 위한 열정과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였을까? 이후부터 위즈아이의 제품촬영 전부 내가 맡게 되었다. 사실 그건 나도 바라던 바였다.
원래 사진찍는걸 좋아했었고,디자인과 촬영 둘다 즐기면서 사는 삶이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제품촬영(마네킹컷,바닥컷)이랑 웹 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원래 웹팀은 내 위로 여자팀장님,밑으로 한살터울 동생(이하 A.KIM)이 들어와 세명이서 같이 일을하다가 반년쯤 지났을무렵 팀장님이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고,새로운 디자이너 (이하 계삐)가 충원되면서부터 위즈아이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A.KIM 과 계삐는 동갑이고 난 한살 위 또래,성격들도 너나 할것없이 밝고 긍정적인지라 업무호흡이 더할나위없이 최고였고, 당연히 위즈아이의 매출상승으로 이어졌다. 사장님이 시행했던 인센티브제도 한몫했다.

웹팀의 그칠줄모르는 팀워크에 딱딱했던 회사분위기도 점점 좋아져갔다.회식을 해도 업무의 연장이 아닌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게 됐고, 워크샵이면 워크샵,생각치도 않은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주기도 하는 복지혜택도 늘어갔다. 한번은 마네킹 촬영시간을 단축시키고자 기존 마네킹과 똑같은 마네킹 하나와 옷을 갈아입힐 아르바이트생 한명만 뽑아주시면 촬영속도를 3배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건의를 했었는데 사장님께서 유레카를 외치며 아이디어 포상이라고 회사용이 아닌 개인용 PC를 한대 선물해주시기도 했다.이제와 생각하면 이때가 가장 즐겁게 회사다닐 맛이 났던것같다.출근하는게 싫었던 적이 없었고, 심지어 주말에도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힐링을 했으니 말이다.

위즈아이를 떠올리면 오픈마켓의 전반적인 업무효율이나 메이크샵,조명 다루는 법,야외촬영 등 경험을 통해서 배운것도 많고, 깨달은 바도 크다.무엇보다도 열정을 갖고 즐겁게 일한 추억이 많은 곳이다.비록 마무리는 좋게 끝내진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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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몰

환.골.탈.태
디자인의 중요성


근무기간 - 6개월 (2011.12 ~ 2012.05)
담당업무 - 디자인,마켓관리
해당직책 - 팀장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위즈아이를 퇴사한 후 들어간 프리스타일몰.위즈아이와 마찬가지로 오픈마켓 남성의류를 판매하는 업체였다. 내가 위즈아이를 다녔다는 이력과 담당했던 업무만으로 러브콜을 했었다. 규모도 작고 허름한 건물,무엇보다 거리가 멀어서 고민은 되었지만 희망급여와 조건 등이 맞아서 입사하게 되었다.
(속물인가보다..)

 

회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건물 외관

프리스타일몰 사장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웹상에서)위즈아이처럼 퀄리티를 바꿔달라'였다. 썸네일이나 작은요소 하나까지 위즈아이의 모든 것을 진심을 담아 선망하셨다. 내가 잡았던 디자인이 누군가에게는 워너비 디자인이 될수도 있다는 것과 동시에 납득이 되버렸다. 왜냐하면 프리스타일몰의 기존 디자인이 상당히 별로였기 때문이다.

 

프리스타일몰 기존 썸네일...촌스럽다

어쨌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바뀌기로 마음먹고 바로 시안작업에 들어갔다.오픈마켓상에 들어가는 모든 이미지들을 교체하는데까지 한달가량 걸렸으며 중간에 로고와 명함도 디자인하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은 빨리 찾아왔다.하루 평균 100~200건 밖에 되지 않았던 매출이 600~800건 까지 올라간 것 이다. 물론 위즈아이만큼은 아니였고,중.소분류 카테고리 광고도 같이 걸었기 때문이겠지만 구매전환율로만 봐도 확실히 성공적인 환골탈태였다.솔직히 시안작업을 하면서 나조차도 단순히 디자인만 바뀐다고 매출을 좌지우지 할거라곤 생각하진 못했는데 디자인이란게 중요하긴 중요하단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만큼 업무성과도 충분히 나서 뿌듯하고,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을 스스로 놓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출.퇴근시간만으로 매일 3시간,조금이라도 야근하고 귀가하면 자정이 훌쩍지나버리니 개인시간도 없고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만가고 웃음도 점점 잃어갔다...즐겁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 해야할 일을 열심히 잘하되,회사자체에 정을 붙히지 못한게 가장 큰 원인이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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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홀릭

환골탈태 두번째
패션가발 쇼핑몰


근무기간 - 1년 4개월 (2012.07 ~ 2013.10)
담당업무 - 사진촬영,사이트 리뉴얼,디자인
해당직책 - 팀장
소재지 -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프리스타일몰을 퇴사한 후 한달정도를 쉬면서 재취업을 위한 쉬엄쉬엄 포트폴리오를 새로이 만들었다. 위즈아이,프리스타일몰 실무에서 만들었던 작업물들이 제법 쌓였고,나름 3년차 경력인데 학원에서 만든 신입냄새 풀풀나는 포트폴리오가 성에 찰리 없었다.

 

두번째 포트폴리오 sub화면

새 포트폴리오로 구직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곳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그 중에서 가발을 판매하는 에스홀릭이란 곳을 선택했는데 에스홀릭에 끌렸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웹이랑 촬영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다.
- 메이크샵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었다.
- 회사가 망할 일은 없어보였다.
- 가깝다.

에스홀릭은 원래 국내와 인도네시아에서 가발공장을 운영하고있는 '샤란언테인상사'의 온라인 사업부이다. 샤란의 사장님이 "온라인으로 가발 한번 팔아봐" 라고 어린 아드님(대표)에게 사업장을 만들어준게 에스홀릭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 대표님이였다.

 

부천 테크노파크안에 위치한 사무실

가발이라곤 해도 이덕화,설운도스러운 어르신들 가발이 아닌 젊은여성층을 겨냥한 패션가발이라서 흥미롭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홀릭도 프리스타일몰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되있던 디자인이 상당히 촌스러웠고,새로 다시 엎지않는 이상 답이 없어보였다.

 

기존 에스홀릭 사이트 화면.
용납 할수없는 오렌지의 향연이 보이는가?

그나마 다행이였던 건 촬영되었던 모델이미지들은 쓸만한게 좀 있었다는 점과 메이크샵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리뉴얼하는 동안 좀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가발나라,핑크에이지,가발매니아,퍼니위그 등 경쟁업체 사이트와도 뒤떨어져 보이지 않게 리뉴얼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에스홀릭에 근무하면서 한달에 한번은 스튜디오나 야외로 나가서 사진촬영을 했었다.좋아하는 사진을 촬영하면서 경험을 쌓는다는 점에선 분명 나에겐 득이지만,다른업체처럼 전문 포토그래퍼의 사진들하고 경쟁이 될만한 결과물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했다. 다행히도 촬영나간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진내공도 덩달아 늘어가는게 느껴졌다.가끔 '내가 찍은게 맞나?' 싶을정도로 만족스럽게 나온 사진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대표님하고는 상당히 잘 통했다.둘다 퇴근후의 맥주한잔의 여유도 즐길줄 알았으며,나의 의견도 존중해주고 작업물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더욱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말할 때도 미안했고 아쉬움도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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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드 사인몰

최고일수도 있고,
최악일수도 있는 회사


근무기간 - 1년 1개월 (2013.12 ~ 2015.01)
담당업무 - 사이트관리,디자인,개인정보관리
해당직급 - 과장
소재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카시드 사인몰은 표찰이나 현판 등 실내,외 간판을 판매하는 회사였다.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수천여가지의 간판 템플릿과 오랜 운영 노하우로 간판 쇼핑몰 업계에서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 곳 이였다.

 

다양한 종류와 소재의 간판 종류를 알게 되었다

카시드의 사장님은 건축디자인을 전공했던 디자이너 출신이여서인지 디자인관련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에게는 별도의 자격증수당도 지급하는 등 디자이너들의 대한 우대가 있는 곳 이였다.더욱이 총 직원수 18명,5개의 부서중 제품디자인팀,사인디자인팀,웹디자인팀 디자인 부서만 3개였다.

 

웹디자인 팀장으로 입사하긴 했지만,웹팀에는 나밖에 없었다.(기존에 있던 웹직원들이 퇴사를 해서 팀 자체가 결원상태였다고 한다.) 나 외에 두명의 디자이너를 충원하여 3명이 되었다.웹팀의 업무자체는 별 다른건 없었다.제품디자인팀에서 넘어오는 VR파일과 제품제원으로 상세페이지 작업 후 사이트와 오픈마켓에 등록하는게 기본 업무였다.

 

카시드사인몰의 독보적인 VR 컨덴츠

카시드는 비록 대기업은 아니였지만 사내 시스템만은 대기업을 지향했다.출,퇴근체크는 물론,업무시간에 그룹웨어를 제외한 메신저사용금지, 매일 오전에는 각 부서별로 전날 진행했던 작업과 특이사항,금일 진행예정사항 등을 업무보고를 하는 전체회의를 하루도 거르지않고 했다. 덕분에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기 전 마무리를 다음날 업무보고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했다.그리고 매월말 각 부서장은 업무개선사항을 무조건 제출,발표해야 했다.분기별로 한번이면 모를까 매월 개선사항을 제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개선사항으로 제출했던 슬라이드 컨덴츠.
현재도 카시드사인몰에서 적용중이다.

무엇보다 카시드에는 해결방안이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바로 사장님인데 기본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한 타입이였기도 하고,자신만의 대세 직원을 선정해서 티가 나게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직원들끼리의 불화가 생기게 만드는 장본인이였다.입사한 후 8개월~9개월때까지는 누가봐도 대세는 웹팀,그리고 나였다. 대세였다는 근거로는 매월 급여일 전에 이달의 직원을 투표해서 1위부터 3위까지는 보너스를 지급하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난 항상 받았었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사장님의 호출로 퇴근 후 따로 술자리를 갖게되며,회의때도 사장님의 지적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얻게된다.

 

제주도 하계워크샵 단체사진
이때까지만해도 대세 직원이였다..하지만

알고보니 각 부서의 팀장들도 이미 예전에 나와 비슷한 대세 특혜를 받았었다고 한다.사실 그때 당시에는 믿지 않았다.내가 특혜를 받으니깐 시샘 정도로 봤었다.

하지만 사실이였다.언제부턴가 이유 모를 잦아지는 사장님의 쓴소리,관심밖으로 벗어난 듯한 시선회피등.회사를 다니면서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을일이 앞으로도 있을까? 없다고 본다.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그때의 난 카시드에서 가장 오래다닌 직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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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피드

평범함을 거부하는
선물발상전환공작소


근무기간 - 10개월 (2015.06 ~ 2016.03)
담당업무 - 제품촬영,디자인,오픈마켓관리
해당직급 - 없음
소재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카시드를 퇴사하고서 또 한번 새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그동안 OPEN SOURCE등을 어느정도 활용하게 될 줄 알게되서 TABLE 기반이였던 포폴을 바꾸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세번째 포트폴리오 화면 일부

그러고 난 후 내가 들어간 곳은 어디서도 볼수없는 독특하고 재밌는 상품들을 취급하는 스투피드란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투피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엉뚱한 제품들로 가득하다.

'대한민국 기획1팀'이라는 상호명도 그렇고 사장님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대장님이라고 불렀다.스투피드의 정신이라 할 수있는 대장님부터 유쾌하고 독특한 분이셨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장님의 인터뷰 페이지를 볼수있다.

대장님 뿐 아니라 스투피드에 다니는 직원들도 평범하진 않다.그동안 나도 어디가면 특이하다는 말도 제법 들었었는데 스투피드안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정도로 개성들이 강했다.

 

응원용품 촬영 겸 스투피드 운동회하던 날

스투피드에서 난 제품촬영(주로 누끼컷)과 디자인,오픈마켓쪽 등록/관리를 맡아서 업무를 보았으며,사방넷이라는 쇼핑몰통합솔루션 교육도 갔다오고 배웠던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판매하는 상품이 아무래도 시즌성이 강한 이벤트 소품들이라 비수기와 성수기가 명확했으며,그 중 할로윈데이는 스투피드에서 가장 중요한 시즌이다.약 6개월간 여름폭죽모음전과 할로윈데이 작업을 마치고서 퇴사를 하였고,이후 4개월여간 외주형태로 크리스마스 용품,프로포즈 용품, 생일파티 용품 촬영과 오픈마켓 작업을 받아서 재택근무를 하였다.

 

퇴사할때 대장님께 선물받은 플레이스테이션4.
(무려 신공정 글레이셔 화이트!)

내가 자기개발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자 독단적으로 퇴사를 결정하여도 선물과 함께,학원을 다니면서도 금전적인 부담을 덜수있게 꾸준히 일거리를 제공해주신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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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슈코리아

작지만 내실있는
헤어왁스 브랜드


근무기간 - 5개월 (2017.01 ~ 2017.05)
담당업무 - 상세페이지,이벤트페이지,기획전
해당직급 - 대리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


17년 1월2일 새해가 밝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였다.인천 검암동에 위치한 헤어왁스 전문 브랜드 DASHU는 자체왁스 뿐만이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브랜딩의 왁스 및 헤어관련 제품들을 개발,유통하는 곳이였다.

다슈에서 운영하는 자사몰 '헤어왁스'

이곳에서는 자사MD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였지만 자사제품을 기반으로 브랜딩화 전략이 중심이였기에 온,오프라인을 통한 입점,판매가 매우 컸다.

   

전국 올리브영이나 LOHB에서도 주력 제품위주로 입점되어있다.

개인적으로도 왁스나 스프레이,포마드 등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였기에 샘플제품을 받거나 원가에 저렴하게 구입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다슈는 MD중심의 회사였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입사 했을때만 해도 MD는 6~7명이였는데 반해 디자이너는 패키지 디자이너가 한명, 웹 디자이너는 한명도 없었다.충원이 아닌 결원에 의한 채용이여서 덕분에 나의 네이트온받은파일 폴더에는 각종 기획전 파일들로 금새 가득차게 되었지만, 추후 디자이너도 한명 더 충원도 되었고,MD분들과도 일정등을 대한 소통이 원활하게 조율 할수있어서 바쁘지만 소화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고,업무 만족도 또한 높았다.

 

모두 퇴근한 후에도 남아 작업을 해야하는 일도 피할순 없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업무량으로만 본다면 분명 버거운곳임에 틀림없지만,다슈에는 분명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어린동생들이지만 8할이 넘는 여직원들(내가 남자인지라 이건 어쩔수없는 본능인듯),그리고 얼마없는 남직원들끼리도 따로 단합도 잘되었고, 조추첨을 해서 다양한 조합(?)으로 한달에 한번 오전근무만 하고 공연이든 볼링이든 지원해주는 팀별모임이 있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상당히 괜찮은 복지였다.

 

남직원들끼리는 여윽시 참치에 이슬이~

다슈에 다니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디자인 작업 본연의 재미를 다시 느끼기도 했고,동영상 편집을 하고싶어 스스로 교재도 사보며 공부를 하기도 하고, 만족도 높게 다니던 중,한통의 전화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그리고 난 다슈를 퇴사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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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맨

A부터 Z까지
내 사업이란 마음으로


근무기간 - 10개월 (2017.06 ~ 2018.03)
담당업무 - 직수입을 제외한 모든 작업
해당직급 - 없음
소재지 - 부천시 상동,고양시 일산동구


다슈에 재직중이였을 때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예전에 인터뷰를 봤던 업체의 대표였다.무역 포워딩 업체였던 당시 사업체와는 별개로 부과적인 사업을 구상중이였고,인터뷰 당시 내 이력등을 봤을때 전반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 사입을 제외한 모든 실무 및 운영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였다.

 

이런 명품브랜드의 카피 제품

제안의 포인트는 상당히 깔끔했으며 기본급+매출액의 퍼센티지로 산정해서 최소 2년간 일해달라는 것 이다. 달콤했다.단순하게 생각해도 내 돈 안쓰고 사업을 해볼수 있는 기회인거나 다름 없었다. 다만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사업 아이템이였는데 레플리카라는 카테고리는 결국 명품 브랜드의 카피제품이라서 판매자체는 합법적인 아이템은 아니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세의류보다 월등히 높은 마진율과 어찌됐든 내가 한 만큼 보람도 느낄수있는 급여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다슈 미안해요

   

사무실 계약,책상 조립등 셋팅부터 하나하나 셋팅하였다.

혼자서 업무와 촬영이 가능한 적당한 크기의 1인 사무실부터 알아보고,책상,조명 등 필요한 장비 하나하나 직접 주문하고 셋팅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업을 시작한다는 게 실감되었다. 예전에 대표님이 수입해놓고 쌓아놨던 재고 상품부터 재촬영 및 사이트 작업이 우선이였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둘 100% 내 취향,내 작업방식대로 진행을 하면서 느꼈지만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직원간에 마찰이란게 없으니깐 스트레스없이 온전히 일에만 집중할 수 가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근무환경이였다.(다만 많이 외롭기도 하다)

리뉴얼하기 전 초기 와이드맨

와이드맨 사업을 시작한 4개월정도 지났을 무렵 11월에 광고진행과 함께 오픈하였고,당장의 구매전환율 보다는 사이트를 알리는데 목적을 두고 싶었지만,광고가 들어간 이후 부터 잦아지는 대표님의 관심(이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말하고싶다)이 부쩍 늘면서 마찰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

 

일산으로 이전한 사무실

일산으로 사무실로 옮기게 되면서부터는 대표님,대표님 친구분까지 사무실을 같이 쓰게 되었고,열심히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노력 대비 매출이 오르진 않고,매출이 나질 않으니 계절에 맞는 상품소싱은 엄두도 못내게 되면서 재고상품만으로 운영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나 역시 지치기도 하고,허탈함만 커져갈 쯔음 대표님은 와이드맨에 더이상 투자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하였고,판매대행(?)이라는 다른 사업을 준비중이였고 그로 인해서 내 업무가 와이드맨이 아닌 다른 사업자들의 판매를 대신해서 상품페이지 제작부터 등록,CS,송장출력 등을 맡아야 하는 전혀 다른 상황이 놓여지면서 와이드맨을 퇴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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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마트

여자가 다니기에 세상 편한
온라인 철물점 꾸밈닷컴


근무기간 - 2년10개월 (2018.10 ~ 2021.08)
담당업무 - 제품촬영 및 등록,자사몰 관리
해당직급 - 대리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김포로 이사를 온 후 구직활동을 하기엔 위치적으로 제한이 있던 와중 인천 서구까지는 출,퇴근이 가능할듯 하여 입사하게 된 철물마트. 철물점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집근처 상가에 있을법한 철물점은 아니고,1층은 오프라인 2층은 온라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였다.

 

철물점치곤 제법 큰 규모의 사옥

입사했을 당시에 나와 비슷한 포지션의 촬영,상품등록을 담당하던 근속 9년차 선임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게 되면서 해당 업무는 내가 맡게 되었다. 9년차 선임의 퇴사사유는 근래 사장님의 아들과 사위가 들어오게 되면서 본인의 입지가 애매해졌다는 이유.그렇듯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 철물마트는 사장님,사모님,딸,아들,사위의 지나친 가족 회사였다.직원수 12~13명정도 소기업에서의 가족경영은 이해 못할 프로세서도 아니고,에스홀릭 시절에도 경험을 해본지라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철물마트에는 그동안 다녀본 회사들과 다르게 큰 장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워라밸보장'이다. 바꿔말해 야근이 없었다.다른 쇼핑몰과 다르게 기본적으로 업무량도 많거나 하지 않았기에 야근이 필요한 상황 자체가 오지 않았다.얼마전 퇴사하는 날까지 세어보면 업무로 인한 야근이 한손에 꼽을 정도다.내가 그나마 오래 다닐수 있었던 이유.

   

꾸밈닷컴 메인화면 / 2층 사무실 전경

여러 업체에서 들어오는 제품들도 다양해서 꾸준히 제품촬영,등록이 주 업무이긴 했지만,자사몰의 리뉴얼은 진행하지 않았지만 하단이나 우측슬라이드영역,브랜드별 별도페이지 등 지속적으로 변경하거나 추가하는 등 자사몰 관리 업무까지가 내 담당 업무였고,업무의 일정관리도 내 재량으로 조절이 가능하여 업무 스트레스는 없었다. 주기적으로 중국수입 물건이 들어오거나,출고쪽에서 주문한 포장박스가 들어오는 날에는 남직원들 한정으로 전문용어로 '까대기' 작업은 덤.

   

수입물건도 나르고,나무도 옮겨심기도 했다.

어느곳이든 장점이 있었다면 단점도 있기 마련,철물마트의 단점은 근속에 따른 급여인상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고인물이다. 회사 전체를 놓고보면 각 파트의 연계로 원활히 돌아가는게 맞고, 돌아가야 하는게 경영자의 역할이거늘 매장,출고,CS 다 따로돌아가고 그걸 잡아주는 구심점이 없다. 주 1회 관리자 회의도 의미없어진지 오래고, 정체되있는 파트장들과 경영자의 회사라 현상유지만 하면서 조금씩 꾸준히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나 역시 한명의 직원으로써 바라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되는게, 회의때 적극적인 의견을 하나 내던 그에 따른 급여인상이든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 아닌데 자기할일만 하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로 다닐 직원이 과연 있을까.

 

남직원 일동 라벨교체작업 투입

내 할일만 하면서 의견 안내고 급여인상없이 워라밸보장만 보고 다니자고 생각하면 분명 다닐만한 곳이다. 답답함을 억누르고 다니고 있었지만 철물마트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4월 사장님께서 건강악화로 별세하셨고,모든 경영권 및 대표를 사위인 이사가 이어받으면서 앞서 서술했던 철물마트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지는 가운데 적어도 나는 다른직원들과 다르게 아직 젊고 이직이 가능하기에 3년 조금 모자라게 다니고 지난 8월 퇴사를 하게 되었다.


   

파스텔크래프트

국내 공예쇼핑몰 최대규모
파스텔크래프트


근무기간 - 1년3개월 (2021.11 ~ 2023.02)
담당업무 - 온라인 총괄 및 매출 관리
해당직급 - 과장
소재지 - 파주시 신촌동


파스텔크래프트는 가장 최근까지 재직했고, 지금까지 다닌 회사중에 가장 큰 규모와 매출의 회사였다.

 

학교건물 수준의 크기의 사옥

 

물류창고 처음봤을땐 이케아처럼 오프라인
판매도 하는줄 알았다.

파스텔크래프트는 어린이집에서 교육목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재료 등을 취급한다.
파스텔클레이(pastelclay.com) 라는 자사몰과 쿠팡, 스마트스토어 운영하는 온라인채널은 적지만 중국현지에 제품 제작 및 사입을 맡고있는 중국팀이 있어서 낮은 단가와 빠른 대응이 가능한 이점 등으로 경쟁업체들보다 기반부터 우위에 위치하고 있다.

웹 작업적인 부분을 서술하자면 제품 특성상 주기가 짧기 때문에 매주 신상품이 수십여가지씩 입고가 되어서 제품촬영,상세작업 일정은 상당히 타이트했다. 게다가 제품 자체가 공예쪽이다보니 조립(?), 만드는 과정컷과 완성품까지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에 할애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기도 하였다.

 

6명이 쓰기엔 부족함이 없었던 웹팀 사무공간

나를 제외한 웹팀 모두가 여성직원으로 구성되 있었고, 기존 개개인에게 할당된 업무분장이 내가 볼땐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아보였다.
예를들어 제품촬영만 하는 직원, 상세페이지만 작업하는 직원. 이렇게 나뉘어 있다보니 한명이라도 사정이 생기면 당연히 차질이 생기는 법.

   

웹팀안에서도 팀을 나누어 진행하였다

촬영과 편집, 퍼블리싱 및 광고관리, 제품디자인 및 배너 정도로 2인1조 팀으로 나누어 새롭게 업무분장을 하였고, 나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론 퍼블리싱,광고관리쪽을 맡으면서도 결국 총괄이기도 했다.

 

사진기능사 자격증 준비

제품 촬영에 대한 피드백을 주기 위함에 홍대에 위치한 선사진학원에 등록해 사진기능사 취득도 하였고,

   

사진기능사 실기시험(좌) / 마케팅 광고 교육(우)

유료로 운영되는 광고마케팅 교육도 사비로 수강하면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 관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내 나름의 노력도 했다. 전적으로 나를 믿고 웹팀을 맡긴 원장님과 함께 일하는 웹팀원들의 대한 책임감 때문이 컸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퇴사 송별회

약 3개월가량 준비했던 대대적인 작업이였던 서버이전 및 사이트 리뉴얼을 2023년 1월에 성공적으로 마친후, 약속한 2월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내가 6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광명 신혼집에서 파주로 출.퇴근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 원장님께서 제시한 몇가지 방안도 있었지만 여의치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무리 지었다.

to be continued..